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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이 몽타주가 맞는데’

 

한파가 몰아치는 12월이다. 크리스마스는 가까워지는데 깡마른 날씨는 거리를 더 춥고 메마르게 했다. 아파트 건물 사이로 몰아치는 바람은 검은 아스팔트를 빗질이라도 하듯 송두리째 쓸어간다. 너무 추운 날씨다. 단지에는 사람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경비원들도 어디로 피신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방문자는 예외 없이 출입 확인을 받지만, 날씨 덕분에 오늘은 무사통과다. 현관문을 열고 뛰어 들어갔다. 바람만 피했는데 벌써 온화한 느낌이다.
(이런 계절에 경매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황망스러울까!)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후다닥 엘리베이터를 올라탔다. 12층에 정차했다. 아파트 현관문에는 ○○○천주교 표식이 달려져 있다.
(많이 좀 보살펴 주시지! 기도빨이 부족했나! 경매까지 나오시고! 개종은 없어야 할 텐데)

 

“띵동띵동”

 

“누구세요!”

 

“예! 형제자매님! 집 좀 보러왔어요!”

 

참고로 난 무신론자다. 남의 집을 방문하며 형제님이라고 개뻥을 날리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성경책이라도 옆구리에 끼고 올걸!

 

임장(입찰 물건을 조사하는 행위) 끝나면 불경하고 성경책 좀 갖춰 놓아야겠다. 70대쯤 돼 보이는 노인이 문을 빼꼼히 열어본다. 경매가 진행되면 하루에도 사람이 몇 명씩 찾아오기 때문에 점유자로서는 일일이 응대하기가 어지간히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응찰자는 몇억 원씩 들어가는 집을 보지도 않고 입찰할 수는 없다. 서로가 못 할 짓이지만, 각자의 이익 실현을 위해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점유자는 학습된 반발심으로 열어주지 않거나 또는 심하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게 마련이다. 안수기도로 고통 분빠이 하러 나온 형제님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아본다. 언뜻 봐도 경매물건 파악하러 온 사람이다.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눈빔을 살포한다.

 

‘형제님’ ‘자매님’이 천주교에서 특허 낸 용어도 아닌데 왜 그리 화를 내시는지! 쩝.

 

“뭐 좀 물어보러 왔습니다”

(점유자의 위협적인 이 패션은 뭔가?)

 

이 추운 겨울에 노인네가 동계훈련 뛰시는지…, ‘난닝구’(UNDER WEAR) 차림으로 현관문을 연다. 나도 모르게 벽면을 두들겨 보고 있었다. 여기가 이렇게 단열이 잘된 아파트였는지 궁금했다. 갑자기 이 아파트가 더 좋아지기 시작한다. 대낮 시간인데도 노인은 창백한 얼굴에 홍조 띤 모습으로 술 냄새를 풍기며 응대했다.
(나 온다고 가부키 분장을 하셨나?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우리 아들이 아파트 다시 찾아온다고 했으니까 너무 애쓰지 마쇼! 이거 다시 낙찰받을 거요!”

 

질문도 하기 전에 귀찮다는 듯이 이렇게 한마디 확 던져버린다.
(얼마나 기다렸던 물건인데 참 섭섭하게 말씀하시네!)

 

노인 양반이 나를 단념시키려고 저렴한 시도하는 거 같지는 않았다. 말이 끝나자 문을 닫으려고 한다. 이대로 이 물건을 방생시킬 수 없다. 황급히 현관 문틈으로 발을 넣어 문이 닫히는 것을 저지했다. (경매는 온몸으로!)

 

“어르신 이왕 왔으니까 집 구경이나 한번 하죠. 속옷 바람으로 다니시는 걸 보니 어르신이 젊었을 때 힘깨나 쓰셨겠어요!

 

금방 우쭐해졌는지 반기며

 

“그럼요! 내가 건강도 하지만 난방비도 거의 안 나와. 지금 보일러도 안 돌린 거야. 위아래 집에서 보일러 켜놓으면 우리 집은 공짜로 뜨거워지지.”

 

사실 나는 집 난방을 알고 싶어서 집을 보고 싶다고 한 말이 아니었다. 어느 집이나 현관에 걸려있는 가족사진을 눈으로 스캔해놓기 위해서였다. 채무자인 아들의 얼굴을 확실하게 기억해놓았다. 민사집행법은 채무자가 경매로 진행되는 본인 소유의 부동산을 응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인은 채무자인 본인 아들이 응찰해서 낙찰을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최고가 매수인으로 선정되더라도 무효가 된다. 자연스럽게 그다음 사람에게 최고가 매수인의 지위가 넘어가게 된다.

 

이 집에도 가족사진이 거실에 걸려있었다. 이런저런 질문을 계속 던졌지만 내 눈은 가족사진에 꽂혀있었다. 글을 외우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몽타주를 기억해 둔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치킨집에 걸려있는 닭을 구별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개찰 시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채무자를 구별해 낼 차선책은 있다. 입찰기일까지만 기억하면 된다. 시한부 작업이다. 기억하자. 기억 못 하면 닭대가리 되는 거다!

 

매각기일.

감정 금액에서 한 번도 저감되지 않은 입찰이기 때문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나와 채무자 두 명 정도 입찰에 응할 것이다. 저쪽은 응찰할 수 없는 부적격자이기 때문에 높은 가격에 응찰한다 해도 무효처리 될 것이다. 차점자인 내가 낙찰받아갈 것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입찰 순서대로 사건을 부르기 시작한다. 드디어 내가 입찰한 사건이 호창되었다. 입찰자는 법대 앞으로 나오라고 한다. 맘 편하게 단독이라면 좋겠다. 감정 금액에서 단돈 일 원도 더 쓰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 나온다면 무조건 낙찰을 못 받게 된다. 앞으로 나가는데 나 혼자만이 아니다. 뒤에 또 누군가 따라 나온다.

(앗…, 망했군!)

 

뒤를 흘낏 돌아보았다. 흐릿하지만 그 집 거실 사진 속에 걸려있던 아들이 틀림없었다. 필시 나보다 높은 금액으로 응찰했을 것이다. 상대가 최고가 매수인으로 선정되는 순간 어깃장을 놓고 경매 파토를 선언할 것이다.
(푸하하하~~~~)

 

잠시 후 예상대로 상대가 최고가 매수인으로 발표되었다. 내 입찰서와 상대방(채무자)의 입찰서를 검토하더니 집행관이 이의 없음을 물어본다. 즉시 이의를 신청했다. 경매법정에서 경매사건 진행 중 이렇게 확신에 차 우렁차게 이의를 신청한 사람은 없었다.

 

“이번 사건 응찰자는 채무자로서 입찰에 응할 수 없는 부적합한 사람입니다.”

 

경매 법정은 소란스러웠다. 방청객은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집행관들은 재난 상황이라도 발생한 듯이 한 곳에 모여 채무자가 맞는지 확인하느라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는 최고가 매수인에게 배포하는 영수증에 찍을 도장을 만지작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띠고 옆에 서 있는 응찰자의 모습을 바라보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폐소생술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결과가 나오면 방청객들은 우~~~하며 집행관에게 야유를 보낼 것이고 신의 한 수를 날린 나는 어깨에 뽕끼를 잔뜩 넣고 법정을 나설 것이다.
(생각만 해도 재미난 광경인데. 쩝.)

 

잠시 후 집행관이 사건 종결을 선언했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행관 왈,

 

“거기 응찰자 이리와 보슈”

 

나를 호명하고 있었다.

 

“여기 보면 알겠지만, 채무자는 ○○○테크놀러지 주식회사이고 저 사람은 자연인입니다. 설사 주식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하더라도 법원은 법인과 자연인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응찰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보고 이의 신청하셔야죠. 잘 모르면 가만히 있던가!”

 

법정 마이크를 통해 방청객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이렇게도 죽는구나! 쪽팔려서.

 

우~~~라는 야유를 기대했던 나는 혀를 차는 방청객들의 소리와 함께 등짝에 수없이 꽂히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법정을 빠져나왔다. 법원 앞 슈퍼마켓에 앉아 ‘누가바’를 빨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말해야 할 때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을 하면 말을 잃는구나.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윤식 ㈜밝은미래투자 대표
다음 카페 ‘프리버드 경매 이야기’ 시샵
랜드프로 부동산 경매 교수
EBS·KBS 부동산 실무 담당교수
굿옥션 상담위원
저서 ‘365일 월세 받는 남자의 고수익 나는 경매’

http://cafe.daum.net/liberal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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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5-27 10: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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