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제6화 아내를 범죄인으로 만듭시다


지루한 경매 강의 시간에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서 던지는 경험담을 이번 지면에 실어봅니다.

벌써 15년 전 사연이다. 강의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사무실에 들어왔다. 핸드폰을 훑어보았다. 한 곳에서 10여 통의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입력이라도 해놓은 사람이라면 누군지 금방 알아차렸을 텐데 알 수 없는 번호가 계속 찍혀 있었다.

 

여러 번 전화한 걸 봐서는 무척이나 다급했던 모양이다. 혹시 겹치기 주차 때문에 차량을 이동해달라는 전화는 아니었는지, 걱정됐다. 오랜 시간 출차하지 못하고 있었을 텐데 미안해서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무척 화가 났을 텐데 의외로 상대방은 공손한 목소리로 응대를 하였다.

 

“혹시 저 모르시겠어요?  ○○○입니다.”

 

그때는 수강생들에게 대우받고 술 얻어먹는 재미에 전국 어디든지 멀다 않고 몸(강의) 팔러 다니고 있었다. (머리가 벗겨진 사람은 아닙니다.)

 

몇 년을 강의했으니 얼마나 많은 수강생이 스쳐 지나가겠는가. 일일이 기억한다는 건 무리였다. 개인적으로 안면인식 장애가 있어서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고약한 약점이 있었다.
 
수화기 속 인물은 “선생님” 하면서 나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예전에 얻어먹은 술값을 이번에 꼭 돌려받겠다는 기세였다. 얼굴을 봐도 안면인식 장애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판국에 목소리만으로 어떤 수강생인지 감별해 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얼굴을 보지 않는 대화는 그래도 내겐 부담이 반감된다. 표정은 아리송해도 입만 반가운 척하면 되는 일이기에 조금은 부담이 줄어들었다.

 

“아! 잘 지내죠!”(참! 넉살 좋아!)
“알아봐 주시니 맘이 편해지네요. 요즘도 술 많이 하시죠.”

 

술 채무 변제기일이 도래한 사람처럼 술 이야기를 환기해 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래전에 가르쳤던 기억이 조금씩 나면서 퍼즐이 하나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약간 통통한 수강생이었다.

 

강남 모 학원에 복음(경매 강의)을 전하러 갔을 때 수강했던 분이었다. 그때만 해도 ‘전도 빨이’ 잘 먹혀서 강의를 개설하면 강의실이 차고 넘쳤다. 현장학습까지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참관했던 수강생이었다. 지금은 유명한 경매 강사가 돼 많은 투자자를 이끌고 다니는 위치까지 올랐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놓고 보니 스타강사의 병아리 시절 이야기가 혹시 그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진다.

 

오랜 기간 전화 한 통 없다가 갑자기 전화한 경우는 십중팔구 사고가 터졌을 때다. 이 양반도 사고가 터진 모양이었다.

 

수강생 왈,
“제가 고향이 동해안이라서 항상 그쪽 부동산을 많이 봅니다. 며칠 전 다금바리급 경매물건을 찾았습니다. 열심히 현장 조사하고 입찰기일에 법원으로 달려갔는데 취하됐더라고요. 얼마나 약이 오르던지 도저히 그대로는 돌아가지 못하겠더라고요. ‘삐끼아줌마’(대출) 손에 들려있는 경매정보지를 강탈해서 말랑말랑해 보이는 물건을 골라 응찰을 했습니다. 입찰서가 정리되고 사건번호를 호창하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더라고요. 결국 단독으로 낙찰됐습니다.”

 

“그래서요?”

 

“법대로 나가는데 뒤통수를 누군가 당기는 느낌이었어요. 법대에 나가지 말라는 듯 뭔가 잘못됐다 싶어 급히 경매정보지 들고 낙찰받은 부동산에 가봤죠. 그런데 정보지에 올라온 사진 속 건물은 낙찰받은 물건이 아니었고 바로 뒤에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이 낙찰받은 집이더라고요. 얼마나 황당하던지 그때 우주의 신비를 맛보았죠. 별이 눈앞에 무수히 깔리더군요. 선생님께서 강의 중에 임장(물건조사) 가보지 않고는 절대로 응찰하지 말라던 말씀이 기억나더라고요. 제가 미쳤나 봅니다. 낙찰을 포기하고 싶은데 보증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은 잘못을 따지고 꾸짖을 때가 아니었다. 벌기도 힘든 몇 천 만 원을 날리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버렸다. 나도 급작스러운 이야기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머릿속에서는 ‘기본에 충실해라. 기본에 충실해라. 기본에 충실해라’ 이야기만 뱅뱅 돌았다. 방법이 없을까 한참을 골똘히 생각했다. 갑자기 묘안이 떠올랐다.

 

“혹시 보증금 현금으로 가져갔어요? 아니면 수표로 가져갔어요?”
“몇 천만 원을 어떻게 현금으로 가져가요. 수표 한 장으로 가져갔죠.”
“누가 은행에서 보증금을 찾아왔습니까?”
“와이프가 찾아왔습니다.”
“그럼 아내에게 수표 분실 신고하라고 하십시오.”
“왜요?”

 

왜 그러겠어! 와이프 범죄자 만들려고 그러는 거지!

 

“부도수표 만드는 겁니다.”

 

※ 민사집행법은 입찰보증금(최저가격에 10%)이 한 푼이라도 부족하게 되면 최고가 매수 신청을 했다고 하더라도 무효처리가 된다.

 

“제 아내가 경매 방해죄로 감옥살이하는 건 아닐까요?”

 

당연히 해야 할 질문이었고 걱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는 이 부분이 낯설게만 들린다. 결혼 취득시효가 끝나지 않았나. 유통 기간 지나면 상황정리 많이들 하던데. 삼강오륜이 물구나무선 이 시대에 의리라는 게 살아있구나!

 

보기 좋았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법원에서 그런 거까지 수사하러 다니지 않습니다.”

 

내 논리는 오늘 보증금으로 낸 수표는 내일 발행은행으로 추심될 것이고 그때 부도 수표라는 것이 확인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보증금 부족으로 낙찰은 무효가 된다. 이론적으로는 맞는데 실무에서 해본 적이 없어서 적용 가능할지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를 범죄인으로 만들 것이냐? 아니면 보증금을 포기할 것이냐?

 

생각해 보고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그가 결심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5분 만에 전화가 왔다. 아니 3분 20초였던가?

 

“와이프 지금 은행에 보냈어요. 곧 부도 처리할 거에요.”

 

다음날 부도수표는 제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고 부도라는 낙인이 찍힌 채 장렬히 최후를 맞이했다. 낙찰받았던 사건은 무효처리 됐다.

 

이 이야기를 강의할 때마다 많이 했다. 비슷한 상황에서 위기를 피해 보고자 많은 마루타가 시도했다가 낭패를 봤다고 한다. 싱크로율이 낮았나! 이제는 경매법원에서 통용되지 않는 일이 돼버렸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밝은미래투자 대표
다음 카페 ‘프리버드 경매 이야기’ 시샵
랜드프로 부동산 경매 교수
EBS·KBS 부동산 실무 담당교수
굿옥션 상담위원
저서 ‘365일 월세 받는 남자의 고수익 나는 경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0-10-06 10:15:32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유니세프_리뉴얼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